[기획] 지리산의보석같은약초이야기 – 신경통 관절염 약 지으려다 약초에 관심 갖게 돼

1964년 약대 졸업하고 진주에서 약국 개업

신경통 호소 환자에 진통제 처방뿐 안타까움

약초에 관심갖기 시작해 골담초에 주목

대학원 진학해 신경통 관절염 치료약 본격 연구

지리산의 허준 성환길 박사 <2>

신경통 환자에 진통제 처방밖에 할 수 없어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성 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성환길 박사는 1964년 부산대 약대를 졸업하고 진주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당시 진주의 중앙통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로타리에 중앙약국이라는 상호로 약국을 열었다. 그런데 당시는 진주에 병원이 그리 많지 않을 시기였다. 그래서 약사가 종합병원 의사만큼 모든 병에 대한 상담을 해야 하는 시대였다.

“당시에는 약사가 종합병원 의사와 같았어요. 아프다고 오는 환자에게 병원에 가서 진단해 보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또 당시는 의약분업이 되지 않아 약사가 처방을 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복잡한 병원보다는 약국에 와서 상담하기를 좋아했었지요.”

성 박사가 약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환자들의 성화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당시에는 신경통 환자가 그렇게 많았다. 그런데 신경통에 주는 약이 진통제 밖에 없었다. 진통제는 잠시 동안 처방은 돼도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는 약이다. 그래서 성 박사는 신경통에 잘 듣는 약이 없을까 하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직 현대적 의료체계가 갖추어지기 전이어서 병원, 약국의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신경통 환자가 그렇게 많았습니다. 진주는 도농 복합지구이다 보니 농사일을 하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그런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경통 약은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였구요. 그래서 진통제만 줄 수는 없어서 이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요.”

성환길 박사는 신경통, 관절염 때문에 약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 박사가 눈여겨 본 것은 약초 중 골담초였다. 골담초는 어릴 때부터 뼈에 좋다고 들어왔다. 또 문헌을 찾아보니 관절염이나 신경통에 좋다고 돼 있었다. 그래서 골담초를 기본으로 해서 우슬 등 몇 가지 약초를 넣어서 약을 지어 주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잘 낫는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골담초에다가 몇 가지 약초를 섞어서 약을 만들어 주었더니 잘 낫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약초란게 그냥 볼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을 했습니다. 중앙대학 약대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골담초를 이용한 신경통 관절염 치료약을 연구했지요.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약은 지금은 개발돼 있습니다.”

성환길 교수를 평생 지리산약초를 연구하도록 이끈 골담초.

약초연구하다가 대학원 진학해 약학박사 받아

성 박사는 자신이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바로 신경통 약을 연구하다가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성 박사는 중앙대학 약대에 진학해 7년간의 연구 끝에 골담초로 신경통약 만드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 박사 하면 ‘골담초 연구자’ 이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성 박사의 메일아이디도 골담초이다.

이렇게 골담초에 집중한 성 박사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지리산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골담초가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살 뻔한 성 박사의 인생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간 것이다.

성환길 박사는 이처럼 신경통 약을 지으려다가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렇게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되고부터 성 박사는 지리산을 찾게 됐다. 지리산은 진주 인근에 있고 또 약초의 산으로 오래전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그랬다.

황인태 기자  ngmn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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