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2부 무오사화) – 27회 연산군과 대간들, 줄다리기를 계속하다.

[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95년 (연산군 1년) 7월28일에 대간이 다시 아뢰었다.

“노사신 같은 간신을 끝내 제거하지 못한다면, 신들이 감히 직에 있을 수 없습니다.”

연산군은 전교하였다.

“임금을 미혹하고 나라를 그르친 후에 제거해도 늦지 않다.”

대간이 또 아뢰었다.

“옛사람의 말에 ‘미세할 적에 방비하고 조짐부터 막아야 한다.’ 하였으니, 임금을 미혹시키고 나라를 그르친 뒤에 구원하려 하면 역시 늦은 것입니다. 지금 노사신의 말을 전하께서 믿고 계시니, 임금을 미혹시킨 것은 이미 징험이 되었습니다만, 나라를 그르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미 임금의 총명을 미혹시켰으니, 나랏일도 따라서 그르쳐 질 것인데, 지금 하교하시기를 ‘임금을 미혹시키고, 나라를 그르친 뒤에 제거해도 늦지 않다.’ 하시니, 신들은 통석(痛惜)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간신을 빨리 제거하시어 종묘사직을 편안하게 하소서. 만약 제거하지 않으신다면 신들이 결코 직에 머물러 있지 못하겠습니다.”

연산군은 역시 듣지 않았다.

이윽고 승정원에서 아뢰었다.

“오늘날처럼 대간이 논쟁한 적은 없었습니다. 논쟁은 대체로 하루나 이틀, 혹은 열흘 안에 끝났습니다. 지금처럼 계속되면 직무만 폐할 뿐 아니라 조정도 안정하지 못할 것이니, 진실로 큰일입니다. 신들의 의견으로는, 의정부·육조에 자문해서 속히 결단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연산군은 짜증냈다.

“경들은 나의 뜻을 다 알면서 어찌하여 이런 말로 아뢰는가?”

승정원이 다시 아뢰었다.

“신들이 노사신의 파직을 청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전하께서 빨리 결단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럼에도 연산군은 노사신을 감쌌다.

“경들이 만약 노사신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아룀이 있는가. 노사신은 선왕의 부탁을 받은 대신이요, 또 그의 말은 시세를 살피고서 한 것인데, 어찌 가벼이 파직할 수 있겠는가.”

(연산군일기 1495년 7월 28일 1번 째 기사)

이 날 훈구대신 윤필상과 연산군의 장인 신승선이 아뢰었다.

윤필상이 아뢰기를,

“엎드려서 어서(御書)를 보니, 재상과 대간을 대우하는 예의가 당연한데, 신이 어찌 감히 덧붙여 의논하리까. 그러나 오늘날의 형세를 살펴보면 서로 용납될 수 없어서 끝내 안정될 리가 없으므로, 신은 한밤중에 일어나 반복하여 생각하였으나, 나이는 늙고 기운이 쇠하여 그 안정시킬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삼공이 소중하지만 대간도 소중하니 대우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대간이 두렵고 삼공이 애석해서가 아니라, 대의로써 헤아릴 때 이처럼 중대한 일은 신하들로서 자의로 할 수 없는 것이니, 바라옵건대, 성심(聖心)으로 재량하소서.”

신승선도 아뢰기를,

“이와 같이 되풀이 논박하고 있으니, 끝내 안정될 리가 없습니다. 대간과 재상이 형세가 서로 용납되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성심(聖心)으로 재량하소서.” (연산군일기 1495년 7월 28일 2번 째 기사)

줄곧 연산군 편에 선 훈구대신 윤필상과 신승선도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7월29일에도 대사헌 최응현·사간 반우형 등이 아뢰었다.

“애당초 신들이 논계(論啓)할 때에는 반드시 윤허하시리라 생각하였는데, 수십 일이 되어도 거절하시니, 신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뢴 것입니다. 노사신 같은 큰 간신은 전하께서 마땅히 빨리 제거하셔야 합니다.”

연산군은 역시 듣지 않았다.

“경들이 여러 날을 두고 뜰 앞에 서 있으니, 실로 미안하다. 그러나 말 한마디 실수했다고 대신을 내쫓는다면 하늘에 계신 선왕의 영령이 나를 옳다 하시겠느냐”

대간이 다시 아뢰었다.

“노사신이 종묘사직에 죄를 지었으므로 옛날 순(舜)임금이 사흉(四凶)을 처단하는 형을 가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1)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들이 조정에 발을 붙이게 될 것이오니, 청컨대 쾌히 처단하소서.”

하지만 연산군은 역시 듣지 않았다. (연산군일기 1495년 7월 29일 1번째 기사)

이렇게 연산군과 대간은 평행선이다. 한편 노사신을 죄주라는 대간의 집요함은 귀감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런 대간들이 계실까?

사진 1. 김일손 묘소의 재실(영모재)

사진 2. 김일손 묘소

사진 3. 탁영 종택

1) 옛날 중국 요(堯)임금 시대에 공공(共工)·환도(驩兜)·삼묘(三苗)·곤(鯀)등 사흉(四凶)이 있었는데, 순(舜)임금은 4흉을 모두 처단했다.

『성종실록』 1488년 11월 28일자 2번째 기사에도 나온다.

“순(舜)임금이 처음 즉위(卽位)하여 공공(共工)을 유주(幽州)에 유배(流配)하고 환도(驩兜)를 숭산(崇山)에 내치며 삼묘(三苗)를 삼위(三危)에 귀양보내고 곤(鯀)을 우산(羽山)에서 죽였습니다. 처음 즉위한 때를 당하여 천하의 일이 많은데 반드시 이것을 급하게 서두른 것은, 대저 음흉한 사람이 조정에 있으면 하루에는 하루의 해(害)를 끼치고 한 해에는 한 해의 해를 끼치므로 천하에서 모두 미워하는 까닭으로 네 죄인을 처벌하자 천하가 복종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곤은 하(夏)나라 시조 우(禹 기원전 2,070년경)임금의 아버지이다. 우는 13년간 황하의 치수를 잘하여 순임금은 우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다.

김세곤 칼럼니스트  segon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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